[만남] 서로의 시간에서 / 장예원, SBS아나운서

수많은 만남으로 이뤄진 삶 속에서 아나운서의 길을 걷고 있는 나는 누군가의 시간에, 그 누군가는 나의 시간에 들어와 한 시절을 공유한다.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새로운 만남에 제법 익숙했던 것 같다. 군인이셨던 아버지의 직업 특성상 우리 가족은 자주 이사를 다녀야만 했는데, 그때마다 늘 새로운 환경에 노출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새로운 만남에 익숙해졌고, 어느 사회에나 잘 녹아들 수 있었다. 물론 당시에는 어린 나이였기에 친구들과 헤어져야 한다는 현실이 버겁기도 했지만, 반대로 그때의 경험들은 의도치 않게 지금 하고 있는 내 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내 꿈과 언제 만났을까. 시간을 돌려 중학교 시절로 거슬러 가보면 방송부 활동을 하면서 꿈에 대한 밑그림을 조금씩 그려나갔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큰 무대에 설 기회가 생긴 나는 그전에는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와 만나게 된다. 무대 아래에서 걱정하며 긴장했던 것과 달리 막상 무대에 오르니 편안해지는 나를 발견한 것이다. , 나에게도 이런 재능이 있구나라고 생각했고, 그때부터 막연히 아나운서를 꿈꾸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꿈이 실현되기까지는 변치 않은 나의 의지와 열정이 긍정적인 동력이 되어주었다.

생각해보면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것이 좋아서가 아니라 사람들과의 만남 그 자체가 좋아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택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 일을 통해 경험한 수많은 만남은 내 삶의 외연과 내연을 확장시켜주었다. 닮고 싶은 많은 선배들을 만날 수 있었고, 수많은 작가와 프로듀서, 스텝들과 협업을 하면서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었다. 이처럼 풍성해진 일상의 풍경 속에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다 보니 늘 새로운 만남이 기대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학창시절에 만났던 친구들이 그리워지곤 한다.

늘 선택받아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좋은 프로그램과 만난다는 것은 너무도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그 모든 만남을 잊을 수는 없지만, 특히 내 이름을 걸고 진행한 첫 프로그램인 <장예원의 오늘 같은 밤>은 생각만으로도 두근거리고 마음이 따뜻해진다. 무엇보다 직접 대면하지 않더라도 서로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공유하며 일대일로 소통할 수 있는 라디오를 워낙 좋아했기 때문이다. DJ와 청취자와의 밀접한 관계는 라디오라는 매체의 결속력을 잘 보여준다. 함께 같은 시간을 살아가며 그 시절을 추억한다는 것은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가. 학창시절의 나도 <정지영의 스위트뮤직박스>를 들으며 힘든 수험생활을 버텨온 기억이 난다. 그래서인지 누군가 내가 진행한 라디오를 듣고 힘이 난다며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면 오히려 내가 위로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일상에 지친 나를 지켜주는 또 다른 버팀목인 <TV동물농장>도 매주 나에게 힐링의 시간을 선물해준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누군가와의 만남을 떠올릴 때면 자연스럽게 연상되는 시가 바로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이다. 라디오와 스포츠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가장 어렵지만 흥미로웠던 것이 바로 인터뷰였다. 짧은 질문만으로도 기대 이상의 답변을 이끌어내야 하는 것은 오로지 인터뷰어의 몫이다. 말과 말이 오가며 마음이 전해지고, 그 마음의 문을 열고 진심으로 소통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의 말을 잘 듣는 자세가 필요하다. 한정된 시간, 나와는 전혀 다른 분야에 있는 인터뷰이를 만나 그 사람의 삶을 간접 체험하는 시간은 깨달음과 배움의 연속이었다.

나 역시 직장인으로서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마주하고 있지만, 급변하는 시대에 맞춰 방송인의 재능과 방송의 형태는 더욱 다양하게 요구되고 있다. 이미 수많은 매체와 채널이 존재하는 지금, 과거에 비해 지상파 아나운서의 입지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개인의 역량을 늘리고 자구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고민해야 한다. 나 역시 그 고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물론 정답을 찾는 것도 쉽지 않겠지만, 아나운서로서의 기본 자질과 소양은 갖추되 스스로의 틀을 깨고 자유로워져야 한다는 것에는 어느 정도 확신을 갖고 있다. , 대중과 방송국이 원하는 일정한 틀과 변화의 경계에서 지혜롭게 균형점을 찾아나가야 할 것이다.

문득 신입 시절 국장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떠오른다. 변하는 게 무조건 나쁜 건 아니지만, 너는 조금 천천히 변했으면 좋겠다는 그 말씀은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남아 가끔 길을 잃고 헤맬 때 별자리가 되어주고 있다. 앞으로 살면서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생기겠지만, 최대한 본연의 내 모습을 잃지 않고 나다움을 지키고 싶다. 어느새 서른 살이 된 7년 차 아나운서로서 앞으로 어떤 색과 결을 갖게 될까. 내일도 오늘처럼 나만의 색을 살리며 진솔한 모습 그대로 사람들에게 다가가야겠다. 그 만남이 서로에게 기쁨과 활력이 되기를 꿈꾸며.

 

 

 

[출처] 월간에세이 Ess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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